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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셔틀콕 황제 박주봉 감독 |
선수시절 못지않은 지도력 발휘로 일본 감독 4년 연장 |
기사입력 : 2013-08-30 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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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일본과 말레이시아 대표 팀이 박주봉 감독을 데려가기 위한 줄다리기를 벌이던 상황이 국제적으로 이슈가 됐었다.
특히 협상과정 하나하나가 뉴스를 장식하며 박 감독의 행보가 말레이시아로 결정되는 듯싶었는데 돌연 일본에 잔류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름휴가 차 국내에 들어온 박주봉 감독을 만나 다시 일본 팀 사령탑에 남게 된 막전막후(幕前幕後)의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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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정에 흔들려 일본 선택
8월 23~25일까지 경기도 안성시에서 진행된 팬클럽 주봉마을 하계투어에 참석 중이어서 박주봉 감독의 목소리가 대회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부드러웠다. 약간 들떠 있는 것도 같았다.
덕분에 꺼내기 조심스러웠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박주봉 감독은 작년 말 실제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말레이시아로 옮길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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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사람도 한두 명 싫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않나. 내가 그렇게 성적을 냈는데 자꾸 딴지 거는 팀이 있어서 좀 뿔따구가 났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로 간다고 넌지시 흘렸는데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안 움직여주더라. 차기 감독으로 일본 사람을 생각하는 부류도 있고 그래서 내가 할 만큼 했고 이제 때가 됐다보다 하고 말레이시아와 본격적으로 이적을 논의했다."
일본 올림픽 사상 배드민턴에서 최초로 메달을 따 일본 배드민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만큼 일본 측에서 적극적으로 잡을 법하건만 반응이 없어 결국 말레이시아행을 결심했던 것. 8년 동안 일본팀을 맡았던 박주봉 감독은 처음 가르친 제자들이 코치로 활동하고 있어 물려줄 때가 됐다보다 하고 말레이시아로의 이적을 기정사실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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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인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내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조건도 바꿔주고 그랬다. 사인만 남겨놓고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일본 배드민턴협회 전무이사, 사무국장 등 관계자들이 있는데서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난리가 났다. 그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계속 할 줄 알고 있었던 거다.”
이때부터 발등에 불 떨어진 일본 측에서 적극적으로 박주봉 감독을 잡기 시작했다. 연봉도 올려주고, 보너스도 주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는 것. 그와 함께 처음 일본 감독을 할 때 대표 팀을 함께 이끌던 이들까지 박주봉 감독을 잡기위해 매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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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에서 나를 대표 팀에 주저앉히려고 지방에 있는 인맥을 동원해 그들이 비행기 타고 나를 만나러왔다. 그들이 와서 사정사정 하니까 인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래서 중국, 홍콩 오픈에 갔다 와서 최종 결정하겠다고 미루고 그때부터 무지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원래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거를 4년으로 해달라고 하고, 딴지거는 팀도 내 뜻대로 하는 조건으로 다시 일본 팀을 맡게 됐다.”
이렇게 해서 박주봉 감독은 일본 협회가 아닌 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과 계약을 맺고 오는 2016년까지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맡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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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으로 따낸 올림픽 은메달
박주봉 감독이 처음 일본 대표팀을 맡을 때만 해도 일본 배드민턴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규모가 작은 대회만 나가 포인트를 쌓아 올림픽에는 대거 출전하지만 막상 대회에서는 초반 탈락이 대부분이었다. 아테네 올림픽에 무려 11명이 출전했지만 10명이 1회전에서 탈락이고, 1명이 2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박주봉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는 무조건 큰 대회에 출전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부딪쳐 깨져봐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를 본인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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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해서 금메달 땄으니 니들도 금메달 따려면 따라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큰 대회에 나갔다. 그때만 해도 일본은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 중심이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을 소속팀이 컨트롤했다. 그 문제로 자꾸 부딪치니까 협회에서 그 쪽을 달래야 하는데 자꾸 나를 달래려 하더라. 그들이 원하는 걸 좀 들어주면서 대표 팀을 운영해 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성적이 안 나는 거 뻔히 아는데 그럴 수 있나. 그 시스템을 바꾸느라 고군분투했다. 이제는 선수들이 나랑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220일 정도 된다.”
박주봉 감독은 일본 대표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성적이라는 걸 알기에 난관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런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박주봉 감독이 일본 대표팀을 맡고부터 계속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 단체전인 토마스컵과 우버컵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여자복식이 4위를 차지했지만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중국 팀을 꺾고 4강에 올라 일본에서는 금메달 딴 것 못지않은 반응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에서 14개 정책종목을 정했다. 거기에 배드민턴이 들어갔는데 메달 못 딴 종목은 배드민턴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고무적인 일이었다. 일본이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갔다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니가 다시 엘리트 체육으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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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니 2012 런던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자복식은 랭킹 4위를 유지하고 있어 그 어느 종목보다 메달권 진입이 기대됐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메달을 땄다. 한국과 중국의 문제가 있어 어부지리로 결승까지 가 은메달을 땄는데 결승에서도 잘 했다. 한국과 중국이 실격처리가 안 됐어도 동메달까지는 가능한 팀이었다.”
큰 대회에서는 늘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던 일본 배드민턴이 8년 동안 박주봉 감독체제를 겪으면서 이제는 어느 대회에서도 메달권 진입이 가능한 팀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 게 바로 런던올림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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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세력으로 세대교체 중
2012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중국,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나라가 세대교체 중이다.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박주봉 감독은 가깝게는 2016년 브라질, 멀게는 2020년까지 내다보며 선수들을 발탁해 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을 대표 선수로 선발했지만 이 선수들은 브라질올림픽 티켓을 따내면 다행이지만 2020년이 오히려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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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 감독이 눈여겨보고 있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누구인지 궁금했다.
“남자단식은 타코 케니치가 괜찮고, 작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켄토 모모타도 괜찮다. 여자단식은 세계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한 노조미 오쿠하라는 무릎을 다쳐서 좀 그렇고 3등한 아야 오호리가 괜찮다. 또 아카네 야마구치라고 고1인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국체전에서 선배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중3때 세계주니어대회 결승까지 간 최연소 대표선수라 기대된다”
박주봉 감독은 남녀 단식에서 어린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 기대를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이 가장 강했던 여자복식은 다소 침체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했다.
“그동안 여자복식은 3, 4개 조가 잘했다. 그런데 런던올림픽 은메달 딴 후지이 미유키가 십자인대 나가서 은퇴하고, 사토코 수에추나도 은퇴한다. 그래서 두 선수와 파트너 했던 둘을 묶었더니 둘 다 후위 공격조라 안되더라. 마미 나이토와 시주카 마츠오는 팀이 해체되면서 사라지고 현재 랭킹 3위인 미사키 마추모토랑 아야카 타카하시 조 하나만 남았다. 남자복식은 히로유키 엔도와 케니치 하야카 조가 랭킹 5위인데 중국, 인도네시아랑은 할 만 한데 이용대랑 고성현 조만 만나면 진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늘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 온 박주봉 감독. 배드민턴 황제란 닉네임에 걸맞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일본 배드민턴 협회와 선수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현역시절부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가는 곳이면 승리가 뒤따랐다. 이미 올림픽 은메달까지 땄으니 다음 목표는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 아니겠는가.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신이 정해준다고 할 정도로 변수가 많다. 올림픽 금메달은 운이 따라야 한다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도 손색없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해 실력이 꾸준히 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지도자가 갖는 진정한 목표 아닐까.
얘기를 듣는 내내 때로 우리가 엄청난 능력자를 보유하고도 그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는데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바로 박주봉 감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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